항목 ID | GC08500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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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盈德靑年會 |
영어공식명칭 | Yeongdeok Youth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허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개설]
영덕청년회(盈德靑年會)는 1921년 청년들의 사회의식 및 민족의식 고양을 위해 설립된 경상북도 영덕 지역 최초의 청년 운동 단체이다.
[설립 목적]
영덕청년회는 1920년대 전반에는 청년의 수양과 친목 도모 및 봉건 의식의 타파와 근대 지식 전파를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대 후반에는 청년의 권익 옹호, 계급의식과 민족의식의 고취 등을 목적으로 내세웠다.
[변천]
1921년 2월 20일 지역 유지와 청년들이 발회식을 가지고 출범하였다. 1920년대 전반의 간부는 회장 정재홍(鄭才泓)·정재현(鄭在鉉)·문명기(文明琦)를 비롯하여 정예술(鄭禮述)·김영한(金英漢)·이상욱(李尙郁)·주병호(朱秉豪) 등이었다. 조선청년총동맹의 조직 전환의 방침에 따라 1926년에 결성된 영덕청년연맹에 가입하여 영덕부에 소속되었다.
1927년 10월에 기존의 회장제 중심에서 집행위원회 체제로 전환하여 민주적인 운영을 강화하였으며, 회원 연령도 만 18세 이상 30세 이하로 제한하여 명실상부한 청년 운동 단체로 발돋움하였다. 1920년대 후반 간부는 집행위원장 강상철(姜尙哲), 부위원장 이기석(李基錫)을 비롯하여 현창범(玄昌範)·유웅경(劉熊慶)·오석숭(吳石崇)·노병주(盧炳柱)·강호근(姜浩根)·문왈수(文曰守) 등 이었다. 조선청년총동맹의 조직 전환의 방침에 따라 1928년 3월에 결성된 영덕청년동맹에 가입하여 영덕지부로 전환하였으며, 1928년 7월에 영덕청년동맹 오보지부와 통합하여 영오(盈烏) 제1지부로 전환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0년대 전반에는 야학 운영을 통해 문맹의 퇴치, 봉건 의식의 타파, 근대 지식을 보급하고 청년을 비롯한 지역민의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벌였다. 1921년 8월에 노동자 대상의 일성야학(一成夜學)을 개설하였으며, 1922년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보통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동을 위해 융덕학원(隆德學院)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또한, 여학생 대상의 야학을 설립하였으며, 중등 수준의 교육기관을 설립하기 위해 지역 유지들과 ‘중학기성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민립대학(民立大學) 설립 운동에 나서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영덕조성회’를 결성하고, 6월에 영덕지방부를 결성하여 민립대학 설립을 위한 선전 활동을 벌였다.
강연 활동도 영덕청년회의 주요 활동이었다. 1920년대 전반에는 청년을 포함한 지역민의 봉건 의식과 잔재 타파, 풍속 개량, 생활 개선, 근대 지식 함양을 위한 강연회를 열었다. 1920년대 후반에는 청년에게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청년의 사명과 임무를 선전하는 내용과 국내외의 주요한 소식을 전하면서 식민지 현실을 인식시키는 강연회와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1925년에는 영덕에서 포교 활동을 벌이던 흠치교(吽哆敎)를 지역민을 현혹하는 사이비 종교로 규정하고, 영덕면 소재의 정교부 사무실을 공격하여 포교 활동을 중지시켰다. 1927년에는 조선공산당 관련자에 대한 고문과 이를 은폐하려는 일제를 규탄하는 항의서를 제출하였다. 또한 일제가 폐쇄한 노동야학을 부활하기 위해 지방 유지들과 함께 활동하여 야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영덕청년회는 영덕 지역에서 최초로 결성된 청년 운동 단체였으며, 청년을 포함한 지역민의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