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도』 「영덕현·영해부 지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33
한자 輿地圖盈德縣寧海府地圖
영어공식명칭 『Yeojido Map』 「Yeongdeok-hyun·Yeonghae-bu Map」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청구기호 - 古4709-68-v.1-6
현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소유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관리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정의]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실린 영덕현·영해부의 지도.

[개설]

『여지도(輿地圖)』 는 영조 재위 기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海東地圖)』와 전체 구성이 비슷하다. 지도의 구도와 몇몇 지명을 제외하고는 『해동지도』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동지도』를 필사한 계통으로 생각된다. 이 밖에 청나라 수도였던 심양(瀋陽)의 「성경여지전도(盛京輿地全圖)」 및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조선여진양국경계도(朝鮮女眞兩國境界圖)」 등 북방 지대의 관방지도가 실려 있어 조선 정부 주도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형태 및 구성]

『여지도』는 채색 필사본 지도로 총 6책으로 편집되었으며 책의 크기는 가로 19㎝, 세로 26.5㎝이다. 조선시대 때 영덕 지역은 영덕군과 영해부로 행정구역이 구분되었기 때문에 해당 지도책에서도 각각의 지도로 제작되었고, 두 지도 모두 4책인 경상도편에 실려 있다.

「영덕현 지도」에서 방리(坊里)는 황색 바탕의 흑색 직사각형 기호를 사용하여 동면(東面)·서면(西面)·중남면(中南面)·외남면(外南面)을 표시하였다. 산맥은 채색이 된 ‘∧’ 모양이 연접하여 산세를 이루는 그림으로 묘사했는데, 남쪽에는 산의 명칭이 생략된 채 청하현(淸河縣)과 경계를 삼고 있다. 북쪽은 임울현(林鬱峴)과 변현(弁峴) 그리고 백운산(白雲山)이 각각 진보현(眞寶縣)과 청송군(靑松郡) 및 영해와 접하고 있으며, 동쪽에 자리한 조보산봉(鳥保山烽)은 영해와 경계를 삼고 있다. 서쪽은 대둔산(大芚山)과 소지산(所之山)이 청송 및 경주와 경계를 두고 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을 한 물줄기가 각 산에서 발원하여 읍성을 외부에서 감싼 후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도로는 생략된 반면에 역참이었던 주등역(酒登驛)과 남역(南驛)은 표기되었는데 주등역만 흑색 바탕의 직사각형 기호를 활용하여 표현하였다.

「영해부 지도」에서 면리(面里)는 황색 바탕의 직사각형 기호를 활용하여 남면·북면·석보면(石保面)·오어면(烏於面)을 표시하였다. 산은 녹색으로 채색이 된 ‘∧’ 모양을 계속 이어 붙여 하나의 산맥으로 형상화하였다. 남쪽에 자리한 산은 백운산과 경악산(鯨岳山)이 있는데 영덕과 경계를 삼고 있다. 북쪽은 등운산(騰雲山)과 천마산(天摩山)이 평해군(平海郡)과 접하고, 덕현산(德峴山)이 영양군(英陽郡)과 접하고 있다. 서쪽은 광산봉(廣山烽)이 진보현(眞寶縣)과 경계를 짓고 있고, 동쪽은 대소산봉(大所山烽)이 바다와 맞닿아 있다. 하천은 청색 물줄기로 묘사했고, 각 산에서 발원하여 읍치 서쪽을 감싸면서 바다로 흘러가는데 명칭은 생략되었다. 역참인 병곡역(柄谷驛)은 흑색 바탕의 직사각형 기호를 이용하여 나타냈고, 영양역(寧陽驛)은 분홍색 바탕의 직사각형 기호를 사용하였다. 도로는 생략되어 지도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특징]

「영덕현 지도」에서 읍성은 성첩(城堞)이 생략된 성곽 모습의 회화로 형상화하였다. 그 안에 객사(客舍)는 솟을지붕 회화로 표현되었고 동헌(東軒) 및 창고와 군기(軍器) 등의 건물들은 우진각지붕의 회화로 묘사되었다. 성문은 남문과 동문이 문루(門樓)의 형태로 그려진 반면에 서문에 자리한 청심루(淸心樓)와 후락당(後樂堂)은 누정(樓亭)으로 묘사되었다. 교육시설인 향교와 서원은 우진각지붕의 기호로 나타냈고, 역원(驛院)이었던 지품원(知品院)도 같은 모양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형승으로 팔각산(八角山)이 기암절벽 형상의 회화로 그려졌으며 임경대(臨鏡臺)와 호호대(浩浩臺)는 바위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봉화대는 적색의 직사각형 기호를 이용했고, 포구(浦口)는 하저포(下渚浦)·강구진(江口津)·장사진(長沙津)이 있는데 글자로만 표기하였다. 다음 장에는 영덕현의 주기(註記)가 기록되어 있는데 인호(人戶)·인구(人口)·환상(還上) 등에 대한 내용과 함께 읍치를 기준으로 해서 인접한 군현과 각 면의 거리를 명기(明記)하고 있다.

「영해부 지도」에서 읍성은 성첩을 가진 성곽 그림으로 묘사하였다. 이 안에 객사는 솟을지붕의 기호로 표현되었고 동헌 및 창고, 군기, 아사(衙舍) 등의 나머지 건물은 우진각지붕의 기호로 묘사되었다. 이에 반해 해연루(海宴樓)는 2층 누각의 기호로 나타냈다. 성문은 남문과 서문이 그려져 있는데 두 문 모두 평거식(平据式)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남쪽 성문은 방어시설인 옹성(甕城)이 묘사되어 있다. 교육시설인 향교 및 인산서원(仁山書院)단산서원(丹山書院)은 우진각지붕의 기호로 들어가 있으며, 역참(驛站)이던 창수원(蒼水院)과 광제원(廣濟院)의 창고도 우진각지붕의 기호를 활용하여 표현하였다. 봉수대는 대소산봉수와 광산봉수가 있는데 모두 적색을 띤 촛불 모양의 형태로 그려졌고, 축산도(丑山島)는 기암절벽의 회화로 묘사하였다. 지도의 뒷장에는 영해부의 주기가 기입되어 있는데 인호·인구·논(田) 등과 관련된 정보와 함께 읍치를 중심으로 각 군현과 면소재지의 거리를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여지도』 「영덕현·영해부 지도」는 조선 후기 영덕 지역의 정치·사회·경제 분야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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