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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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陽里英陽南氏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Single-Clan Village of Yeongyang-Nam Clan in Sinyang-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양리에 있는 영양 남씨 집성촌.
[개설]
영양남씨는 경상북도 영양군을 관향으로 하고, 남민을 시조로 한 성씨이다. 신양리 영양남씨는 17세기에 율은(栗隱) 남승정(南承鄭)과 죽은(竹隱) 남승필(南承弼) 형제가 양원마을과 식률마을에 입촌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많은 유현을 배출하여 영양남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영덕읍에서 안동으로 가는 국도 제34호선 가에 자리한 마을이다. 영덕읍에서 약 9㎞ 떨어져 있다. 신양삼거리의 신기(新基), 신기마을 북쪽의 양원(陽原), 신기마을의 남쪽 오십천 건너에 있는 식률(植栗)의 세 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오십천과 대서천이 합류하는 삼각지점의 천변에 비교적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신양리란 지명은 신기의 ‘신’ 자와 양원의 ‘양’ 자를 따서 합칭한 이름이다. 양원은 삼거리 북쪽의 산밑에 자리 잡아 햇볕이 잘 드는 마을이며, 식률은 밤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신기는 국도 제34호선과 국가지원지방도 제69호선이 갈라지는 신양리의 중심으로 마을회관이 있고, 과거에는 장이 섰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 북면에 속했으며, 1895년 지방관제 개편 때 양원리, 식률리, 신기리로 분동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세 마을과 서면의 재궁동 일부를 병합하여 신양동이라 하고 지품면에 편입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영양남씨로 신양리에 처음 입주한 사람은 소위장군(昭威將軍)을 지낸 회암(悔菴) 남유의(南有義)[1527~1598]인데 식률에 잠시 기거하다가 달산면 봉산리로 이거하였다. 그 후 남유의의 손자 남승정이 양원에 입주하고, 남승필이 식률에 입주하여 이들 형제가 양원과 식률의 사실상 입촌조가 되었다. 남승정과 남승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세거하면서 많은 유현을 배출하여 영양남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현황]
1992년에 간행된 『영덕군 향토사』에서 보고한 신양리 주민의 성씨별 가구분포를 보면 총 94가구 중 영양남씨가 52가구, 김해김씨 13가구, 고성이씨 10가구, 기타 성씨 19가구로 영양남씨가 절반을 넘고 있다. 2011년에도 총 119가구 중 영양남씨가 40가구, 안동권씨 12가구, 영천이씨 11가구, 김해김씨 10가구, 김녕김씨 10가구, 기타 성씨 36가구로 여전히 영양남씨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양원마을에는 체화정(棣華亭)이, 식률마을에는 죽은당(竹隱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