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75
한자 朴石用
영어공식명칭 Park Seogyong
이칭/별칭 박대춘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5년 4월 3일연표보기 - 박석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박석용 영릉의진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36년 8월 16일연표보기 - 박석용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박석용,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영릉의진 유격장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박성용(朴石用)은 1875년 4월 3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박대춘(朴帶春)이다.

[활동 사항]

박석용영릉의진이 구성되자 유격장을 맡았다. 영릉의진은 1906년 일제 침략의 전초기지인 울진(鬱珍)을 공격하기 위해 신돌석(申乭石)[1878~1908]이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일으킨 의병부대이다. 1907년 8월 9일 동지들과 함께 화승총을 휴대하고 영해군 서면에 거주하는 권씨(權氏)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으로 엽전 30관문(貫文)을 징수하고, 1907년 9월에는 경상북도 영양 경무분파소, 10월에는 영해 경무분서를 공격하였다. 12월 27일에는 영해군 서면 조벽곡(鳥壁谷)의 성씨는 모르는 홍렬(洪烈)에게 쌀 1섬을 군자(軍資)로 징발하였으며, 1908년에는 진보군 상리면 신촌의 최씨 성의 인물에게 엽전 5관문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08년 8월 2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정부는 박석용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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