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95 |
---|---|
한자 | 林漢祚 |
영어공식명칭 | Lim Hanjo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7월 14일 - 임한조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4월 - 임한조 영릉의진 가담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임한조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 169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영릉의진 의병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임한조(林漢祚)[1881~?]는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임한조는 1907년 4월 신돌석의 영릉의진에 참여하였다. 영릉의진은 1906년 3월 13일 신돌석이 지금의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일으킨 의병부대이다. 신돌석은 경상북도 청송(靑松)·영양(英陽) 등지에서 군자금을 마련하고, 일본 침략의 전초기지가 마련되고 있는 강원도 삼척(三陟)과 경상북도 울진(鬱珍)을 공격하여 일본 세력을 내몰고자 하였다. 임한조가 영릉의진에서 맡은 임무는 군자금 모집과 무기 확보였다. 1907년 4월 12일 동료 의병 100여 명과 함께 무기를 가지고 영덕군 외남면(外南面) 하화동(下禾洞)[지금의 영덕군 남정면 중화리]의 최찰방(崔察訪) 집으로 가서 군자금으로 엽전 170냥을 징수하였다. 4월 13일에는 청하군 청하읍(淸河邑)[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들어가 군수품으로 짚신 30죽을 징발하였다. 임한조는 영릉의진에서 일주일 간 활동하고 귀가하여 농사일에 전념하였으나, 1908년 10월 22일 의병 가담 사실을 탐지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11월 4일 대구지방재판소 형사부에서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1912년 칙령 제23호에 따라 징역 8년, 1914년 칙령 제10호에 따라 징역 6년 9월 7일로 감형되었다.
[상훈과 추모]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