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02
한자 姜大烈
영어공식명칭 Kang Daeyeol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연표보기 - 강대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강대열 영덕읍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53년연표보기 - 강대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강대열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영덕읍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오포동 교회 영수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강대열(姜大烈)[1881~1953]은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강대열은 1919년 당시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 오포동 교회 영수(領袖)로 활동하고 있었다. 영덕읍 만세운동은 3월 12일 김세영(金世榮)김혁동(金爀東)강우근(姜佑根)에게 보내 만세운동을 부탁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강우근권태원(權泰源)과 협의하여 3월 18일 영덕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강대열강우근의 참여 권유로 참가를 결심하였고, 3월 17일에는 김순근(金順根)·송기주(宋基柱)에게 참여를 권유하였다. 한편, 3월 16일 경상북도 영양군의 이승구(李承玖)는 박윤규(朴潤奎)로부터 소식을 듣고 3월 18일 만세운동을 일으키자고 결의하였다.

3월 18일 강대열강우근·이승구 등과 함께 영덕읍의 기독교 신자 50여 명을 이끌고 남석동 시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오후 2시경 이들은 1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강대열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눠주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일제 경찰이 출동해 군중을 제지하면서 강대열을 포함한 주도 인사 20여 명이 붙잡혔고, 군중은 해산하였다. 이후 영덕공립보통학교 학생과 졸업생 등이 영덕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는 주도 인사들을 구출하려고 하였으나, 일제의 경계 활동 강화로 실패하였다.

강대열은 일제에 붙잡힌 후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징역 1년 2월형을 받았으나, 공소하여 1919년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형량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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