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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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友慶 |
영어공식명칭 | Shin Ugyeong |
이칭/별칭 | 신도환,신태범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2월 5일 - 신우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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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3월 - 신우경 영릉의진 가담 |
몰년 시기/일시 | 1962년 3월 30일 - 신우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신우경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510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영릉의진 의병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신우경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본명은 신태범(申泰範)이다. 우경은 신우경의 자이다. 이명으로 신도환(申道環)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예로 1888년 2월 5일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아버지 신석주(申錫柱)와 어머니 분성김씨(盆城金氏)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영릉의진 창의대장 신돌석의 아우이다.
[활동 사항]
신우경은 친형 신돌석이 1906년 3월 13일 경상북도 영해군(寧海郡) 복평리(福坪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가담하여 군사 모집을 담당하였다. 영릉의진의 병력 규모는 100~300명 정도였다. 짧은 기간에 많은 병력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활빈당(活貧黨)과 같은 의적(義賊) 무리를 바탕으로 히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돌석의 용맹과 지휘력에 대한 명망, 아버지 신석주의 넉넉한 군자금 제공, 동생 신우경의 군사 모집 활동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영릉의진은 일본 침략 세력의 전초기지가 마련되고 있는 삼척(三陟)·울진(鬱珍) 분쇄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렇기에 의병 중에서도 일본군이 가장 경계하던 부대였다. 그러던 중 1908년 11월 19일 신돌석이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눌곡(訥谷)에서 피살되었다. 신우경은 암살자 처단을 계획하고 의병 10여 명을 규합하여 암살범들을 추적하였다. 그러나 대구(大邱) 조항산(鳥項山)에서 일본군의 급습을 받고 접전 끝에 무릎에 총상을 입었다. 이후 신우경은 은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