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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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學述 |
영어공식명칭 | Lee Haksul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진희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8월 22일 - 이학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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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이학술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70년 12월 15일 - 이학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2년 - 이학술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학술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
활동지 |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학술의 본적과 주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출생지는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이다. 창수면 3.1운동을 주도한 이수각(李壽珏)의 둘째 아들이다.
[활동 사항]
창수면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오후 4시 무렵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이수각·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의 주도로 약 200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일어났다. 이학술도 아버지 이수각을 따라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학술과 군중들은 태극기와 몽둥이를 휴대한 채 창수주재소를 공격하였는데, 이학술은 신리동의 김경발·남천순·신덕호 등과 함께 주재소 건물·시설·기물을 파괴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된 이학술은 4월 5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6월 5일 대구지방법원과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주거침입, 건조물 손괴, 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