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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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靑泉-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현주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신청천의 시」 영덕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덕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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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신청천의 시」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
성격 | 전설|인물담 |
주요 등장 인물 | 청천 신유한|중국 사람|주막집 딸 |
모티프 유형 | 시 짓기 내기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인 신유한의 시 짓기 내기에 대한 이야기.
[개설]
신유한(申維翰)[1681~1752]의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이다. 1705년(숙종 31) 진사시에 입격하고,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특히 시에 걸작이 많고 사(詞)에도 능하였다. 저서로는 『해유록(海遊錄)』과 『청천집(靑泉集)』이 있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영덕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덕군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채록 경위는 밝혀져 있지 않다.
[내용]
신유한이 중국에 가서 시를 짓는데, 그 주제가 인간의 네 가지 기쁨[四喜]이었다. 중국 사람이 먼저 시를 짓기를 "대한봉감우(大旱逢甘雨) 타향봉고인(他鄕逢故人) 등과괘명시(登科挂名時) 동방무월야(洞房無月夜)"라고 하였다. 신유한이 보기에 시가 미흡하므로 오언시에 두 자를 넣어 칠언시로 하였다. 신유한은 "칠년대한봉감우(七年大旱逢甘雨) 천리타향봉고인(千里他鄕逢故人) 소년등과괘명시(少年登科挂名時) 화촉동방무월야(華燭洞房無月夜)"라고 시를 지어 당선되었다. 한편, 먼저 사희(四喜)를 쓴 중국 사람은 자신이 당선되지 못하자 원통하여 피를 토하고 죽었다.
신유한이 어느 날 잠이 들었는데, 꿈에 죽은 중국 사람이 찾아와서 자신이 지은 글인 "이매망량사석귀(魑魅魍魎四碩鬼)"의 뒷 구절을 완성하지 못하면 저승으로 잡아가겠다고 겁박하였다. 예전에 신유한이 중국에 가다가 어느 주막에서 비를 피한 적이 있었는데, 주막집 딸이 방으로 들어와서 바둑을 두자고 하였다. 신유한이 아홉 판을 내리 지자 처녀가 정색을 하면서 "'이매망량사석귀(魑魅魍魎四碩鬼)'라고 하면 '비파금슬팔대왕(琵琶琴瑟八大王)'이라고 해야 합니다. 당신이 이런 글을 가볍게 여겼다가는 혼이 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신유한은 꿈에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예전에 주막에서의 일이 떠올라 '비파금슬팔대왕(琵琶琴瑟八大王)'이라고 하여 귀신을 물리쳤다. 이는 곧 '이매망량'이 귀신 '귀(鬼)' 자가 한 개씩 들어 있는 네 큰 귀신을 뜻하는데 반하여, '비파금슬'은 임금 '왕(王)' 자가 여덟 개나 있어서 여덟 대왕이 네 귀신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이다.
[모티프 분석]
「신청천의 시」의 주요 모티프는 '시 짓기 내기'이다. 신유한이 시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는 것을 기본 내용으로 삼아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신유한은 서자이고 홍길동(洪吉童)과 비슷하게 태어나 천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문장이 뛰어나 중국에서 시를 제일 잘 짓는 사람으로 신유한을 뽑기도 하였다. 실제 신유한은 일본에서 문장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하였는데, 그 배경을 중국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 사람보다 한시를 잘 지을 수 있다는 자부심이 드러난다. 한편, 다른 지방에서는 이러한 시 짓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최치원(崔致遠)[857~?]이나 정몽주(鄭夢周)[1337~1392]인 경우가 있다. 영덕 지역에서 신유한으로 전해지는 것은 지역성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