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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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將軍水-將帥-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현주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0년 6월 5일 - 「장군수 마시고 장수 된 사람」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기산1동에 거주하는 권태방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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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 「장군수 마시고 장수 된 사람」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장군수 마시고 장수 된 사람」 영덕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덕군지』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장군수 마시고 장수 된 사람」 영덕문화원에서 간행한 『창수면지』에 수록 |
관련 지명 | 형제봉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 |
채록지 | 「장군수 마시고 장수 된 사람」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기산1동 |
성격 | 전설|지명 유래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박의장 장군|가개도치 |
모티프 유형 | 마시면 힘이 세어지는 물|중의 횡포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서 장군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영해부(寧海府) 원고리(元皐里)[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서 태어난 박의장(朴毅長)[1555~1615]의 호는 무의공(武毅公)이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해 주부(主簿)가 되고, 1588년 진해현감(鎭海縣監)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경주판관이 되었다. 장기군수 이수일(李守一)과 함께 박진을 도와 적에게 빼앗긴 경주성의 탈환 작전에서 화차(火車)와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사용해 큰 성과를 거두는 등 전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 경상좌도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 등을 지냈다. 죽은 후 호조판서에 추증(追贈)되고 영해의 정충사(貞忠祠)와 구봉정사(九峯精舍)에 제향(祭享)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1980년 6월 5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1동에서 권태방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구비문학대계』 7-6에 수록하였다. 2002년 영덕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덕군지』와 2009년 영덕문화원에서 간행한 『창수면지』에 수록되었다.
[내용]
우장골[위정동]에 절이 있었는데, 무의공 박의장이 어릴 적에 공부하던 곳이다. 힘 센 중이 절 앞의 용두봉에 앉아서 내려다보고 여자 행차가 올라오면 뛰어 내려가서 욕을 보이는 등 행패가 심하였다. 무의공이 가만히 그 중을 보니, 어느 큰 바위를 젖히고 물을 떠먹고는 다시 봉하였다. 무의공이 속새의 가느다란 줄기를 뽑아서 바위 틈에 넣어 물을 빨아먹어 보니 휠씬 힘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중은 밤에 마시고, 무의공은 낮에 마시곤 하였다. 점점 힘이 세어진 무의공은 이제 바위를 들어 붓대롱을 넣어 물을 마셨다.
중은 자신이 먹는 물이 적게 나오는 것을 의심하여, 큰집에 가서 도련님이 글공부는 하지 않고 사냥만 다닌다고 일러바쳤다. 그러자 집에서는 무의공을 불러서 활을 메고 인량동까지 4~5리 거리를 내려가게 하였다. 무의공은 내려가면서 새, 까치 등을 보이는 족족 다 잡아서 바지 가랑이에 넣었다. 무의공에게 매를 치려고 바지 대님을 풀자 새와 짐승이 수북이 쏟아졌다. 그러자 집에서도 문반(文班)이든 무반(武班)이든 맘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무의공의 집에서 중을 잡았는데, 중의 이름은 가개도치라고 하였다.
[모티프 분석]
「장군수 마시고 장수된 사람」의 주요 모티프는 ‘마시면 힘이 세어지는 물’이다. 마시면 힘이 세어지거나 젊어지는 샘물에 관련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하여 전한다. 영덕군 내에서도 「장군수 마시고 장수된 사람」, 「정장군과 장군수」, 「장군수」 등 약간의 변이를 지닌 이야기가 여럿 전해 내려온다. 누구나 힘이나 젊음을 추구하지만 이루기 힘든 것이기에 그것을 이루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보인다. 이 설화에서 특이점은 원래 장군수를 먹었던 인물이 약탈과 횡포를 일삼는 중이라는 점에서 불교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설화는 형제봉(兄弟峰) 아래 있었던 위장사(葦長寺)와 샘터에 대한 지명 유래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