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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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院前里平澤林氏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Single-Clan Village of Pyeongtaek-Lim Clan in Wonjeon-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리에 있는 평택 임씨 집성촌.
[개설]
평택임씨는 경기도 평택을 관향으로 하고, 임언수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평택임씨가 원전리에 정착하여 세거하게 된 경위는 분명하지 않지만, 주민 구성이 다양하고 인구의 이동이 심한 마을에서 평택임씨가 다른 성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수를 점하면서 세거하여 평택임씨 집성촌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마을입지]
영덕읍에서 안동시로 향하는 국도 제34호선의 복곡리와 황장리 중간에 있는 노변마을이다. 영덕읍에서 약 24㎞, 지품면사무소에서 약 12㎞의 거리에 있다. 황장리를 지나 청송군과 접경을 이루는 산악지역이지만, 오십천 상류의 두 줄기 지류가 만나 반월형으로 돌아나가면서 만든 비교적 넓은 평지에 자리 잡아 마을의 규모가 크다. 지품면출장소, 보건진료소, 우편취급소, 노인복지회관, 농협지소 등이 있다. 전에는 초등학교와 경찰지서도 있었고, 1960년대에는 한때 5일장이 서기도 하였다. 지품면 서북지역의 행정과 치안의 중심 역할을 했던 마을이다.
[명칭 유래]
15세기 후반인 성종 연간에 이씨(李氏)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고 조선시대 관리들의 공무출장 때 숙박을 하던 지품원(知品院)이 있었다고 원터[院垈]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 마을 동남쪽 교회 옆이 원이 있었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향장(鄕長) 임병영(林秉英)이 재양(載陽)이라 개칭하고 서북쪽으로 500m 떨어진 조그만 취락인 재곡동(材谷洞)을 합쳐 원전동(院前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원전(院前)이란 지명도 원의 앞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 북면에 속했으며, 정조 연간에는 입석주막리 또는 입석리라 부르기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두 개의 자연마을을 합쳐 원전동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평택임씨가 원전리에 입촌하게 된 과정은 분명하지 않다. 향장 임병영이 마을 이름을 원전동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지지만, 임병영이 평택임씨 입촌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입촌 후의 선조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주민 구성이 다양하고 이동이 심한 마을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평택임씨들이 다수를 점하면서 세거하고 있다.
[현황]
『영덕군 향토사』[1992]에는 당시 주민 140가구 중 평택임씨가 37가구로 보고하였다. 평택임씨 외에는 영천이씨 10가구, 김해김씨 6가구, 남양홍씨 5가구, 월성최씨 5가구 등 다양한 성씨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절대수로 보면 평택임씨 집성촌이라 보기 어렵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주민들의 이동이 많았을 마을의 특성을 고려하면 대대로 세거한 37가구는 마을의 중심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011년의 기록에는 총 87가구 중 평택임씨 12가구, 경주김씨 5가구 등 약 50개 성씨가 나타나고 있다. 각성마을 속에 평택임씨가 두드러진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