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읍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360
한자 野城邑誌
영어공식명칭 Yaseong Eupji
이칭/별칭 영덕읍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86년연표보기 - 『야성읍지』 편찬
간행 시기/일시 2003년 - 『야성읍지』, 『영덕사료집』에 영인 및 국역본 수록
성격 읍지
편자 신치달
권책 15장
행자 20행 20자
권수제 야성읍지(野城邑誌)

[정의]

1786년 경상도 영덕현에서 편찬된 읍지.

[저자]

신치달(申致達)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이며, 자는 사극(士剋)이다. 김하구(金夏九)의 문인으로 문행(文行)이 있었다고 하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향촌에서 학문에 힘썼다.

[편찬/간행 경위]

1786년 전국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으로 편찬된 경상도 각 고을의 읍지가 현재 일본 덴리도서관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에 정서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1786년 편찬된 『야성읍지(野城邑誌)』는 이마니시문고본과 유형이 다르다. 반면, 호구는 민호 3,760호, 인구 14,696명으로 동일한데, 이마니시문고본과 동일한 ‘병오식(丙午式][1786년]’을 따르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1786년 전국 읍지상송령 당시 영덕현에서는 두 유형의 읍지가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데, 『야성읍지』는 그중 한 본이다. 권말에 신치달의 아들 신백중(申伯重)이 쓴 후기가 수록되어 있다. 후기에 따르면, 『야성읍지』는 영덕 남강서원(南江書院)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1823년(순조 23) 신백중이 새롭게 단장하고 직접 유지(遺志)를 남겼다고 한다.

[형태/서지]

『야성읍지』는 모두 15장으로, 행자수는 20행 20자로 정서하였으며, 권수제는 야성읍지(野城邑誌)이다. 2003년 영덕문화원에서 간행한 『영덕사료집』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야성읍지』는 1768년에 보급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보완 유형[『경상도읍지』 유형] 수록 항목을 기준으로 편찬되었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 관직, 성씨, 풍속, 지계(地界), 형승, 토산, 성곽, 관방(關防), 봉수, 공해, 창고, 학교, 사묘(祠廟), 역원, 교량, 제언, 불우, 고적, 호구, 전결(田結), 군액, 각방곡(各坊谷), 기우소(祈雨所), 명환, 무과, 생진(生進), 음직(蔭職), 충의(忠義), 정렬(貞烈), 부기(附記) 순이다. 전형적인 『여지도서』 보완 유형에서는 환적과 문과를 수록하였으나, 이 읍지에서는 명환·무과·생진·음직을 수록하였으며, 항목명이 다르거나 누락한 항목이 많다. 형승에는 옥계(玉溪)·용추(龍湫)·함벽대(涵碧臺)·호호대(浩浩臺)의 경관 및 고사나 시를 실었으며, 창고에는 권근의 객사 기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야성읍지』는 18세기 후반 영덕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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